은교(김고은) - 10대 여고생 (주로 하의실종패션을 즐겨 입음 ㅎ)
이적요(박해일)- 아주 유명한 시인, 70대 노인. 산속에서 혼자 살고, 가끔 서지우라는 제자가 와서 수발을 들어준다.
서지우(김무열) - 이적요의 제자. 어느날 이적요 시인이 쓴 소설 '심장'을 서지우 이름으로 출간하게 만들어 유명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재능은 없다.
며칠전에 케이블 TV에서 영화 '은교'를 보았다.
매체에서는 노인과 여고생의 파격적인 사랑 어쩌고.. 라는 자극적인 소재로만 보아왔지만, 나는 마음은 아직 젊은 것 같지만 이미 늙어버려 슬픈 이적요 시인 할아버지가 젊은 은교에게 느끼는 풋풋하고 아련한 사랑의 마음에 마음이 참 아팠다.
이 영화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에게는 이 글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더이상 읽지 않고 닫으셔도 됩니다.
늙음과 젊음. 시적인 감성의 있고 없음. 경험축적에 따른 삶을 보는 눈....
어려서 아름다운 은교는(시적인 감수성도 있지만)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이 없다.
(은교는 나중에 나이가 든 후에야 '은교' 소설을 쓴 사람이 이적요 시인임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어린 은교일 때에는 그런 걸 알 수 없었다. 들리는 대로만 판단할 뿐.)
젊고 공대생다운 뚝심의 서지우는, 시적인 감성과 글쓰는 재주가 없다.
(삶을 보는 눈도 있고 젊은 서지우는,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글재주.. 그리고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시인의 마음에 불안하고 분노하고 질투한다.)
시 말고도 글 쓰는 재주또한 뛰어난 이적요 시인은, 너무 많은 삶의 경험으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자신의 사랑을 드러낼 수 없다. 그리고 자신의 나이듦이 슬프다.
이 영화 내에서 이적요 시인이 한 말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라는 말에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다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이미 30대에 접어든 나도.. 마음은 아직 20살 청춘 같다.
그리고 나서 문득 알게 된 사실... 내가 나이 들어 70대가 되어도, 그런 늙어버린 내 신체를 보면서도 나는 내가 20살 청춘 같을 때가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씁쓸해 진다.
무엇보다 거기 나오는 어린 은교는, 뭐랄까.. 여고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말 너무 예뻤다. (왜 어린 강아지들이 예뻐보이듯 생기가 넘친달까) 그리고 본인은 스스로가 그렇게 반짝반짝 빛이 난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미 늙어버린 사람(나처럼 ㅋㅋ)은 그저 쳐다만 보는 것 만으로도 그렇게 예쁘게 보이는데. (이 즈음에서는 젊음의 소중함을 느꼈다 ㅠㅠ 아~ 아직 조금이라도 더 젊을때 더 예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늙은 이적요 시인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고등학생이라도 된 냥 정말 풋풋하게 그 생기있는 은교에게 마음이 갔다. (은교 역시 마음이 잘 통한 이적요 할아버지를 좋아했고) 아마도 어린 은교와 함께 있으면, 자신이 젊어지는 것처럼 느껴져 기분이 좋았을 것 같다. 정말 20살 청년처럼 설레기도 하고... 그렇지만 본인도 느끼고 있다. 세상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신의 이런 순수한 마음은 순수하게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걸.
그러나 시인의 젊은 제자는 그렇게 오랫동안이나 따르고 몸바쳐 충성을 바친 자기보다 은교를 더 예뻐하는 시인이 미웠고, 그렇게 쉽게 자신의 스승의 마음을 독차지한 은교가 미웠고, 또 자신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그 시인의 글재주가 시기가 났다.
그래서 숨겨놓았던 스승의 소설을 몰래 훔쳐내 세상에 내 보이고 상까지 받으면서도,
'70대 노인이 10대 여고생에게 그런 마음을 품는게 더럽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며 글을 훔친 것에 대한 하등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보상심리라는게 참 이상하다.
나는 바라는 것 없이 널 좋아하므로 모든걸 다 준다고 말을 하지만,
내가 1을 주면 상대방으로부터 1을 받고 싶어하는게 (1을 받지 못하면 뭔가 받을걸 못받은 기분이 되어 다른 1을 뺏고 싶어하는..) 사람의 심리 같다.
야근 수당 없이 야근을 한 날엔, 회사에서 무료로 제공해주는 커피라도 여러잔 마셔야 기분이 좋아지고...
발렌타인데이때 초콜릿을 하나 사주면, 상대방으로 부터 화이트데이때 비슷한 크기의 사탕을 받지 못하면 기분이 나쁘다.
그저 스승을 좋아하고 따라서 밥도 차려주고 집안일도 돌봐 주었다고 하지만,
그 스승이 자신에게 마음을 주지 않자 그 스승의 수작을 자신의 이름으로 내고도 마음의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왠지 받아야 할 것을 받았다는 느낌?
문제는 이 시인의 순수한 사랑에 대한 시적 감성을 이 제자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걸 공대생 감성이라고 표현하는게 공순이 입장에서는 좀 슬프긴 했지만 ㅠㅠ)
아마 서지우에게 있어서 남녀간의 사랑은 그저그런 통속적인 육체관계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적요 시인은 애초에 처음부터 이 서지우라는 제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적요 시인이 좋아하는 타입의 사람이 애시당초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이 좋아하는 타입의 사람이 아니어도 내치지 않는것이 바로 이 늙음의 하나이리라.)
그래서 결정적으로 이적요 시인이 그렇게나 유리처럼 아끼고 바라만 보고 있던 은교와의 하룻밤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렀을 것이며... 이적요 시인의 분노의 정도에 대해서도 전혀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 영화의 제일 마지막 부분이 사실 인상깊었다.
홀로 남은 노인은 죽는 날만을 기다리며 폐인처럼 살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 이제 대학생이 된듯한 은교가 어느날 문득, 알게 되었다. 이 노인의 사랑에 대해. 소설에서 그대로 그리고 있는 그 날의 느낌은 말을 통해서 (특히 별을 이해하지 못하는 서지우에게라면) 전달 될 수 있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할아버지를 찾아온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은교를 잡지 않는다.
이미 자신에게는 죽음이 가까워 온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은교에게는 그저 떠나서 더이상 들리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나지막히 마지막 인사를 건넬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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